2009/05/12 09:00

응급의학과 인턴


4월, 하루 4시간 잠을 자면 '와 많이 잤네' 라고 생각하던 정형외과 인턴을 마치고
5월, 응급의학과 인턴일을 시작.

누구나 살면서 '아파죽겠다'라고 최소한 한번쯤은 느낀다. 이 경우 찾아가는 곳이 응급실.
의학적으로 '응급상황'은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외과적으로는 각종 열상, 둔상, 좌상, 골절, 화상, 중독 등 쉽게 말해 찢어지고, 얻어맞고, 찔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계단에서 구르고, 뼈가 부러지고, 뜨거운 것에 데이고, 감전되는고, 독극물이나 약물에 많이 노출 되는 등 질병이 아닌 모든 event가 응급상황이다. 의학적으로 자세히 검사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과적 응급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1) 질식: 숨이 안쉬어지거나 숨차는 상태
2) 실신: 갑자기 기절함
3) 출혈: 피를 토하거나 소변, 대변에서 피가 나옴
4) 머리나 가슴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
5) 배가 아플 때 손으로 눌러봐서 특정 부위가 누르거나 뗄때 심한 통증
6) 40도 이상의 고열

이 정도가 내과적인 응급 상황이고(5는 외과적이긴 함)  그 밖에 한번쯤 겪어봤던 열이나 통증은 의학적인 응급은 아니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대학병원이지만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에 위치해 있고 병원 규모도 크지 않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비응급 환자들도 응급실에 많이 온다. 밤에 잠자다가 배아프거나 열나면 응급실로 걸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적인 응급은 위와 같지만, 응급의학에서는 본인이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응급상황이라고 보기 때문에 아무리 비응급환자라도 응급실에 오면 처치나 설명을 잘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비응급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솔직히 짜증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최대한 참으면서 겉으로 티가 안나길 바라고 있다.  환자가 오는 데로 돈이라도 그대로 나한테 들어오면 짜증이 덜 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진짜 응급 환자들에게 처치하고, 차팅도 하고 CT방도 갔다 오고, 주사도 하고, 채혈도 하고, 할일도 많은데 별로 해줄게 없는 비응급 환자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비응급처럼 보여도 사실은 응급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에 속마음을 최대한 숨기고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

사실 우리 나라의 응급 진료비는 다른 나라(사회주의 국가들이 아닌)에 비해선 싼 편이다. 물론 접수비 5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이런 저런 진료를 하면 최소 7~8만원은 나온다. CT라도 찍으면 10만원 추가됨) 진짜 응급 질환으로 병원에 온 사람의 진료가 지연 될 정도로 비응급 환자가 많이 올 수 있는 비용이다. 가끔 일하다가 접수비가 10만원만 되도 가만 놔두고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는 환자들은 좀 덜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응급실에 갔다온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응급실 의사, 간호사들이 매우 불친절하다고 느낀 적이 많을 것이다. 그런 경우 자신의 생명이 위독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화내지 말고 안심하길 바란다.(좀 말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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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22:30

OR and War


수술이 끝나고 난 직후 수술방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일단 선혈이 낭자하고, 붕대나 거즈가 나뒹굴며, 수술포나 가운, 기타 수술 도구를 포장한 비닐 등이 마구 쌓여있다.
이렇게 혼잡한 수술방은 10여분 만에 깔끔히 청소해주는 직원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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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22:27

Bovie knife


2007년 MBC 드라마 '하얀 거탑' 의 수술 장면에서 외과의 장준혁(김명민)과장이 멋지고 부드럽게 '보비'라고 했던 대사가 생각이 난다. 보비란 Bovie knife의 줄임말로, 전기를 이용하여 조직을 박리, 절제하거나 지혈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수술도구이다.


이런 식으로 생겼다.

이 기구가 발명되기 전엔 수술 도중 피도 무척 많이 나서 지금보다 훨씬 수술이 위험했을 것 같다. 위키피디아에선 보비나이프의 발명이 1920년대라고 하니 이 기구의 발명으로 외과 수술 기술이 지금까지 발전해 올 수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보비나이프의 원리는 쉽게 말해 전기로 국소적인 고열을 발생시켜 조직이나 피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환자의 몸에 -극을 띄는 끈끈이를 붙이고 보비나이프의 팁에서 전기를 흘리면 닿는 부분에 열이 발생한다. 직접 수술 장면을 보면 보비나이프의 팁과 조직에 번쩍이는 불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도구로, 자칫 잘못하면 화상을 입거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옛날 어느 날에 환자에게 줄 산소가 산소통에서 새어나온 상황에서 이 보비나이프의 불꽃이 화재를 일으켰다는 얘기도 들었다. 지금은 산소통이 수술방에 있지는 않고 수돗물처럼 전체공급 시스템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일은 없다. 또한 보비나이프는 전신으로 전기가 통하는 원리로 정상조직에도 데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안쓰려고 하는 외과의도 있다.

아무튼 이 기구가 최악인 것은 방금 말한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전기로 지지는(지진다고들 한다!) 냄새가 매우 고약하기 때문이다.  그냥 대충 표현하면 타이어를 태운 불로 삼겹살을 구운 냄새랄까.. 게다가 지방, 근육, 피를 지질 때 냄새는 미묘하게 다른데 공통점은 모두 매우 불쾌한 냄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연기는 발암물질이라고 하며 몇몇 서전들은 독가스라고 하는 걸 들었다. 이 냄새를 즐길 수 있어야먄 훌륭한 외과의가 될 터인데 나하곤 먼 얘기가 될 것 같다. 이놈의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바이폴라'라고 양 극을 사용해 전신데미지를 줄이는 새로운 보비나이프나, '하모니'라고 불리며 초음파를 이용해 박리,지혈을 하는 수술기구 등,  더 부드럽고 데미지가 적은 수술 기구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풍기는 냄새도 최악임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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